박근혜 정부, 국정원 ‘이석기’ 압수수색 선(先)인지 했을까
박근혜 정부, 국정원 ‘이석기’ 압수수색 선(先)인지 했을까
  • 최신형 기자
  • 승인 2013.08.28 16: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수의 재구성①]한국 보수진영, 위기국면 때마다 ‘색깔론’으로 국면전환, 왜?

▲ 박근혜 대통령(왼쪽)과 남재준 국정원장@Newsis

[에브리뉴스=최신형 기자] 매카시즘(McCarthyism). 지난 1950~1954년 미국을 휩쓴 반공주의. 미국의 공화당 조시프 메카시 상원의원이 “내 손안에 미국에서 활동 중인 공산주의자 297명의 명단이 있다”고 한 이후 미 전역에는 ‘공산주의자 색출’에 광풍이 일었다. 매카시즘 광풍에 그 당시 1만여 명이 실직하고 수백 명이 수감됐지만, ‘공산주의자’로 판명된 사람은 없었다.

‘친북(親北)·종북(從北)·좌파(左派)’ 한국 사회에서 흔히 ‘색깔론’ 공격수단으로 사용되는 용어다. 일부 보수진영에선 이들을 가리켜 ‘북한 주체사상’에 동조하는 ‘빨갱이’라고, 반대진영에선 보수가 압도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균형추 역할을 하는 ‘깨어있는 집단’으로 평가한다. 해방 이후 계속된 ‘남북대치’의 특수한 정치환경 탓이다.

어김없이 등장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6개월을 막 지난 직후 ‘색깔론’이 여의도 정가를 휩쓸고 있다.

국정원(국가정보원)이 28일 오전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과 당 관계자, 시민사회단체 등 12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태로 여야의 ‘강(强) 대 강(强)’ 대결이 극에 달한 시점에서 느닷없이 ‘공안몰이’가 등장한 셈이다.

이들의 혐의는 ‘내란예비음모 및 국가보안법(이적동조)’ 위반. 일부 언론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5월 ‘통신·유류시설 파괴 모의’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 등에 대한 혐의 실체 여부는 쉽게 예단할 수 없지만, 문민정부 수립(1992년 김영삼 정부) 이후 단 한 번도 내란죄가 적용된 적이 없었던 만큼 기소 여부와 관계없이 정치권에 미칠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대목은 이 의원 등에 대한 압수수색 ‘시점’과 ‘주체’다. 결론부터 말하면, 시점은 전광석화같이 전격적이었고, 주체는 대선 개입 의혹의 정점에 서 있는 국정원이다.

검찰은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에 대한 내란죄 적용 여부를 2010년부터 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3년간 진행된 사건이 국정원 대선 개입 사태의 장기화 국면에서 전격 등장한 것이다.

이날 국회에서 만난 통합진보당 관계자를 비롯해 야권인사들은 국정원의 압수수색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 인사들은 “사태파악이 안 됐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검찰이 지난 3년 동안 내사한 이 의원의 ‘내란예비음모와 국가보안법 찬양’ 혐의가 왜 박근혜 정부 출범 6개월 직후 불거졌는지 의문으로 남는다.

국정원 ‘이석기’ 카드에 담긴 함의, 퍼즐 맞춰보니

국정원법에 따르면, 내란죄의 경우 국정원의 직접 수사권을 인정하고 있다. 국정원이 이날 실시한 압수수색 영장은 ‘수원지검’이 ‘수원지법’으로부터 발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정원의 내란죄 직접 수사권은 ‘임의규정’이지 강행규정이 아니다. 국정원이 왜 ‘이석기 압수수색’에 총대를 멨는지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모든 게 불확실하다. ‘이석기 내란예비음모’ 등의 혐의 실체도 국정원과 검찰의 기획수사설도 국정원-검찰-박근혜 정부의 교감설도 마찬가지다.

다만 통합진보당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드러난 정황을 맞춰보면, 하나의 그림이 그려진다. 바로 ‘국면전환’이다. 이 의원 등의 내란예비음모 혐의 실체 여부와 관계없이 그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것은 색깔론 정국이 몰고 온 국면전환이다. 국정주도권의 향배다.

국정원과 검찰이, 박근혜 정부가 의도했든 안 했든 ‘이석기 압수수색’ 단행으로 여의도 정가는 ‘공안정국’으로 급속히 빨려 들어갔다. 통합진보당 경기동부연합의 ‘내란죄’ 혐의가 블랙홀로 작용하면서 국정원 대선 개입 사태도 결산심사도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공약 논란도 크게 퇴색됐다는 얘기다.

특히 국정원이 앞장서서 이 의원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한 만큼 통합진보당 경기동부연합의 내란죄 혐의실체가 드러난다면, 민주당 등 야권이 국정원 개혁의 일환으로 주장하는 국정원의 국내정치파트 폐지는 즉시 무력화된다.

 

▲ 통합진보당 이석기, 김재연 의원과 당 관계자들@Newsis

검찰수사 과정에서 이 의원 등의 활동이 ‘북한과 연계됐다’는 정황증거가 나올 경우 국민들의 반북(反北)심리에 불을 지피게 되면서 민심이 국정원의 대내정보 수집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날 전격적인 압수수색으로 국정원은 대선 개입 의혹을 차단하고 야권의 국정원 개혁 주장을 일시에 무너뜨리는 ‘1석2조’ 효과를 볼 수 있는 셈이다.

이 경우 야권은 수세에 몰린다. 민주당과 진보정당 모두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다. 다만 양당의 행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통합진보당은 박근혜 정부의 공안탄압을 전면에 내걸고 장외투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 이석기 의원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의 압수수색을 “촛불 저항이 거세지자 촛불시위를 잠재우기 위한 공안탄압”으로 규정한 뒤 “(국정원의) 부정선거 실체가 드러남에 따라서 초유의 위기에 내몰린 청와대와 해체 직전의 국정원이 유신시대에 써먹던 용공조작극을 다시 21세기에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정당해산을 들먹이면서 진보세력을 말살시키려고 했던 집권세력의 정권유지 전략이 본격 가동되기 시작했다”면서 “모든 민주세력의 힘을 모아 유신시대 부활을 막고 청와대와 국정원의 부정선거 범행을 반드시 단죄하겠다”고 날을 세웠다.

문제는 민주당의 행보다. 통합진보당 경기동부연합에 ‘색깔론 딱지’가 붙은 가운데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고수한다면, 즉각 “민주당도 종북세력이냐”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매카시즘 정국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민주당이 이날 오후 3시 30분 현재까지 국정원의 압수수색과 관련한 공식 논평을 하지 않은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민주당이 지난해 19대 총선 당시 불거진 부정경선 논란 이후 통합진보당을 향해 “야권연대는 없다”고 못 박은 상황이기 때문에 선뜻 연대전선을 형성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국정원과 검찰 등 공안당국이 앞서 “기본적인 국가관을 의심받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돼서는 안 된다”고 한 박 대통령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는 행보를 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국정원 개혁안 무력화와 야권 갈라치기로 국면전환을 꾀하게 된 셈이다.

색깔론, 보수진영의 국면전환 최적 수단

색깔론의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앞서 지난 20일 국회 국정원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은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에게 “광주의 경찰이냐, 대한민국의 경찰이냐”고 물어 야권의 반발을 샀다.

지난 1980년 전두환 신군부에서 이뤄진 광주학살에 대한 역사적 ‘몰이해’에서 나온 비상식적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뜨거웠던 80년 여름, 광주의 아픔을 단지 반대편을 타격하기 위해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는 등 색깔론을 자기의 지지세력을 결집시키는 데 이용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2년차인 2009년 4.29 재보선에선 당시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과거 10년 동안 좌파 정권이 이 나라 경제를 망쳐 놨는데 좌파의 아류들이 국회의원이 된다면 (울산)북구의 경제는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고, 공성진 최고위원은 “선거날이 용산참사 100일이 되는 날이고 5월 1일은 노동절, 2일은 촛불시위 1주년이 되는 등 소위 체제 전복 세력에게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해 파문이 일었다.

앞서 지난 2008년 5월부터 100여일 간 진행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반대집회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1만 명의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하라”고 촛불배후설을 제기했고 당시 여당 내부에선 “지난 잃어버린 10년 세력들이 총궐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는 발언이 심심치 않게 나왔다.

이뿐만이 아니다. 1971년 대선을 앞두고 터진 재일동포 간첩사건을 시작으로, 1987년 대선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 1992년 대선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의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1997년 대선 때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의 월북사건 등 그간 보수진영은 색깔론을 기득권 유지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진보진영 한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보수진영의 색깔론 공세와 관련해 “기득권 상실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한 뒤 “(보수진영은) 한국 정치역사에서 이데올로기 통치를 통해 반대편을 짓눌렀다”고 비판했다. 기득권 세력이 색깔론을 앞세워 사회 전반에 광범위한 통제력을 부여, 가치의 다변화 흐름을 억제했다는 얘기다.

< 저작권자 © 에브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기사제보 : 편집국(02-786-6666),everynews@everynews.co.kr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호 : 에브리뉴스 EveryNews
  •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800 (진미파라곤) 313호
  • 대표전화 : 02-786-6666
  • 팩스 : 02-786-6662
  • 정기간행물·등록번호 : 서울 아 00689
  • 발행인 : 김종원
  • 편집인 : 김종원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종열
  • 등록일 : 2008-10-20
  • 발행일 : 2011-07-01
  • 에브리뉴스 EveryNews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1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에브리뉴스 EveryNew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everynews@every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