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원전에 사는 사람들(2)
[르포] 원전에 사는 사람들(2)
  • 김양균 기자
  • 승인 2014.11.11 18: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안에 무심해졌다
▲ “불안? 원자력 옆에 사는 사람들은 생활을 위해서 사는 거니까. 무심해졌다고 해야 할까.” (c)김양균

[에브리뉴스=김양균 기자] “못 믿는다. 전에도 연장 안한다고 약속해놓고 연장했잖아. 정해진 수명이 다 되면 없앤다고 했잖아요. 안 없애고 다시 법적으로 해가지고 십 년 연장하고, 또 그런 식으로 그러니까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잖아.”

예정대로라면 고리원전은 2017년 가동이 멈춰야 한다. 그러나 길천마을에서 만난 주민 김영희(가명)씨는 이 말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원전이 폭발할까봐 겁내는 것이 아니라 이주를 하지 못할까봐 걱정한다고 했다. 공포는 일상화된 지 오래다. 그렇게 불안한 삶은 계속 이어진다. 김 씨가 연거푸 담배를 피워 물었다.

앞으로 어쩔 작정이냐는 물음에 김 씨도 이주 이야기를 꺼내다. “이주되면 나가고, 안 되면 계속 살아야지. 불안? 원자력 옆에 사는 사람들은 생활을 위해서 사는 거니까. 무심해졌다고 해야 할까…….”

마을은 변해있었다

낚싯대를 붙잡고 있던 이선영(가명)씨는 도통 낚시에 관심이 없어보였다. 그를 만난 곳은 원전 바로 옆의 부둣가. 원자력 발전소를 지척에 두고 잡은 해산물, 문제는 없을까. 그러나 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싱싱하다. 활어회라 인기가 많지. 저기 보소. 다 횟집인기라.” 그을린 얼굴에 깊은 주름, 이 씨의 얼굴에 초로의 피로함이 묻어났다.

이 씨는 마을이 그린벨트 지역으로 묶여 있던 시절을 기억해냈다. 원전이 건설되기 전의 얘기라고 했다. 기억속의 마을은 그저 못 사는 촌동네였다. 처음 공사할 때 떠나, 객지에서 이십여 년을 떠돌다 돌아온 고향. 마을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고 했다.

“70~80년대에는 발전소 다니는 손님들로 돈 많이 벌었지. 발전소에서 철야 이런 거하면 회사에서 식권 발행하니까, 식권 장사들도 있고 그랬거든. 구멍가게에서 담배, 술 같은 거 살 때도 식권으로 바꿔줬다. 부산까지 식권장사를 했다. 지금은 아예 그런 게 없잖아. 지금은 이제 한수원 장사지. 나 같이 없는 사람이야 근근이 살지.”

세를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원전에 반대할 겨를도 없다고 했다. 그가 언성을 높였다. 집 있고 땅 많은 사람들이 땅값 떨어지고 그럴까봐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돈이 없어 고달픈 삶’ 그리고 불안함. 길천마을 주민들은 돈의 유무를 떠나 공포를 공유했다. 물론 그 실체는 가까이,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낚싯대를 걷어 올리며 이 씨가 중얼거렸다. 정부에서 주민들을 한꺼번에 이주시키지 않는지 궁금하지 않냐고. 기자에게 묻는 말이었을까. 오른손에 낚싯대를 움켜잡은 이 씨의 머리가 바닷바람에 휘날렸다. 돌풍을 맞고 서 있을 자신이 없어졌을 무렵, 이 씨의 목소리가 바람에 뒤섞여 날아왔다. “사람들은 한꺼번에 하면 뭉치게 되어있어요.”

멀리 원전 너머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계속)

 

▲ (c)김양균

< 저작권자 © 에브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기사제보 : 편집국(02-786-6666),everynews@everynews.co.kr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호 : 에브리뉴스 EveryNews
  •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800 (진미파라곤) 313호
  • 대표전화 : 02-786-6666
  • 팩스 : 02-786-6662
  • 정기간행물·등록번호 : 서울 아 00689
  • 발행인 : 김종원
  • 편집인 : 김종원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종열
  • 등록일 : 2008-10-20
  • 발행일 : 2011-07-01
  • 에브리뉴스 EveryNews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1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에브리뉴스 EveryNew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everynews@every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