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롯데케미칼 여수 공장 비정규직의 죽음…´왜´
[단독] 롯데케미칼 여수 공장 비정규직의 죽음…´왜´
  • 윤진석·서지연 기자
  • 승인 2015.03.12 03:08
  •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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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공장 롯데엠알시 근로자의 산재처리 갈등 이유는

[에브리뉴스=윤진석·서지연기자] 지난 1월 8일 한 화학 공장 비정규직 근로자가 돌연사했다. 유족은 과로사, 1시간 37분간의 방치, 병원 기록일지 수정 및 감시, 미행 등에 의혹을 제기하며 합당한 산재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거꾸로 회사는 산재신청을 하라고 하는데 유족이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고개가 갸웃해지는 가운데 산재처리를 둘러싼 이들의 갈등 내막을 <에브리뉴스>가 단독 취재했다.

▲ 전남 여수 롯데케미칼 3공장ⓒ에브리뉴스(사진=故한지훈씨 유족)

 "몸이 많이 아파요." 전남 여수 중흥동 172번지 롯데케미칼 3공장(호남석유여수공장)내 롯데엠알시 작업장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한지훈(남·71년생)씨가 어머니 우옥순 씨에게 전화를 건 시각은 2015년 1월 5일 오후 3시 40분. 그로부터 49분이 지난 4시 29분, 한씨는 다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택시 타고 공장으로 와줘요." 부랴부랴 택시를 탄 우씨에게 아들로부터 재차 전화가 걸려온 시각은 20분 뒤인 오후 4시 49분. 당시 한씨는 숨이 끊어질 듯 다급한 목소리로 '고열이 나고,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숨도 못 쉬겠다. 쓰러질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는 연락 두절.

우씨가 탄 택시가 회사 정문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5시 23분. 같은 시각 전남 여수 소방서 119안전센터 구급차도 정문 앞에 도착했다. 한씨가 의식을 잃고 땅바닥에 누워 있던 곳은 정문 앞 경비실 안. 한씨를 목격한 경비원 얘기로는 경비실에 들어온 뒤 1분도 채 안 돼 한씨는 가슴이 답답하다는 통증 호소를 하다,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이들은 한씨의 기도를 확보하고자 한씨를 바닥에 뉘였다고 했다. 여수 소방서가 기록한 구급 일지(1월 5일자)에서도 이때 한씨는 구급대원이 목격할 당시부터 병원으로 향하던 내내 한씨는 의식이 없고, 말을 못한 것으로 나와 있다.

회사가 지정한 J 병원으로 한씨가 옮겨진 시각은 18분 만인 오후 5시 41분.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한씨의 상태를 확인한 담당의사는 우씨에게 더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고, 이후 한씨는 다음날인 1월 6일 순천 S 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뒤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하지만 40도까지 치솟은 고열 등 급성 폐렴 증상, 콩팥기능 상실 등 합병증을 겪던 중 중증 패혈증으로 8일 새벽 1시 끝내 사망했다.

▲고 한지훈씨 형이 동생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서지연 기자
위 내용은 지난 3월 4일 故(고)한지훈씨 어머니인 우옥순(47년생)씨로부터 건네받은 자료와 취재한 것을 토대로 사망 경과 일지를 재구성한 것이다.

"우리 아들을 살려내라"

우씨와 지훈씨 형을 만난 곳은 서울 보라매공원 근처의 롯데관악타워 앞.-건물 안에는 롯데케미칼과 롯데엠알시가 있다.-먼저 시선이 닿은 곳은 리어카 안의 흰색 천으로 둘러싸인 관인 듯 보이는 기다란 상자와 그 위로 세워진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지훈씨의 영정 사진이었다. 리어카에 매 달린 현수막에는 “우리 아들을 살려내라” 등의 글이 적혀 있다. 아스팔트 바닥 위로는 단단한 대자보 크기의 패널 여러 개가 일렬로 펴져 있고, “고열이 나고 몸이 안 좋아 1초가 급한 상태가 됐는데 응급조치 없이 1시간 37분이나 방치했다”가 적힌 큼지막한 글자도 눈에 들어왔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시멘트 벽돌 밑에 있는 유인물들이 연신 펄럭거렸다. 이들은 지난 1월부터 본사 앞에서 지훈씨의 산재처리 촉구를 위한 무언의 시위를 한다고 했다. 무슨 문제가 있어 갈등이 수습되지 않는 걸까. 우씨와 함께 롯데케미칼 1층 로비 찻집으로 들어갔다. 우씨는 꽤 무거워 보이는 서류가방을 품에서 놓지를 않았다. 우선 자초지종부터 물었다.ㅡ현장 대화의 생생함을 전달하고자 전라도 특유의 우씨 육성을 중간 중간 그대로 옮긴다. 회사, 전문가 등 취재원의 답변은 시간 구애 없이 배치했다.ㅡ

“2014년 9월 12일 날 첫 계약을 했어요. 여기는 목사님이 소개를 해줬어요. 처음엔 엄마 재미있어. 다닐만해. 토요일 일요일 쉬고 다닐 만해요. 명랑한 소리로 다녔는디…. 두 달쯤 지나서 ‘비정규직으로 한씨는 일도 성실하고 착하게 다니니까 2년 계약직 끝내고 60살까지 연장 근무할 수 있게 해 준다’, 회사 측에서 그라고 말을 했다고 했어요.” 이후 지훈씨가 맡게 된 업무는 초기 담당했던 간단한 작업보다 가중된 일이었다고 우씨는 전했다. 이때부터 지훈씨는 집에 돌아와서 힘든 내색을 자주 비췄다고 한다. “‘엄마, 나 마흔 살이 넘도록 이런 용어는 처음 들어봐’ 말이 어렵다, 힘들다, 짜증 난다는 등의 얘기를 자주 했어요.” 우씨가 바뀐 사항이라고 보여준 종이는 분담 관련 협의 문서(2014.11.26)였다. 일과 시간에 TBA(테트라부틸알코올)입고 관련, 며칠간 현장근무자와 교대로 하되 작업 숙지 후부터는 MMA(메틸메타크릴에이트)출하 담당자(지훈씨)가 일임한다는 내용이었다.

▲서울 롯데케미칼 본사 앞에 고 한지훈씨 산재처리 촉구를 위한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서지연 기자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힘들다고 했나요.
“아들 말로는 생산직 직원들이 우리 아들 어깨를 툭툭 치면서 ‘비정규직으로씨 당신이 맡은 일이 오전 여덟 시 반부터 오후 다섯 시 반까지 한 사람 일이고, 거기다 이것(새로 부여받은 업무)까지 맡으면 오전 아홉 시부터 다섯 시 반까지 하루 일인데, 두 사람 일을 왜 혼자서 해. 바보가 아닌 이상 못 받아도 300~400만 원은 받아야 해’ 라는 말을 오다 가다 많이들 하곤 했대요. 오전에 A가 얘기하면, 오후엔 B가 얘기하고, C가 얘기하니까…. 아들이 집에 돌아와서는 일도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고통스럽다며 괴로워했어요.”
이와 관련, 지훈씨 고향 후배인 여수 선원동에 거주하는 서모씨도(남,80년생)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훈 형님은 건강했고, 쾌활했어요. 진짜 성실한 가장이었어요. 저희 가게에도 자주 놀러 왔어요. 그런데 회사(롯데케미칼)를 옮기고 나서는 전화해도 잘 못 받을 때가 잦고 매장에도 통 오지를 못했어요”라며 지훈씨가 입사 전후 달라진 점에 대해 부연했다.

"장애특별전형으로 들어간 건데…"

- 아드님이 받는 월급은 얼마였나요.
우씨는 다른 일반 직원들보다 지훈씨가 적은 월급을 받았다고 했다. “매월 170만 원 받았어요. 우리 아들은 장애인특별전형으로 들어갔고,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월급을 적게 받아요, 대신 조금 수월한 일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일이 늘어난 거예요. 넉 달 전부터인가는 전 직원 모두 20만 원을 올려줬다고 하대요.”

지훈씨는 1988년 교통사고 당시 죽은 피가 고여 고막이 썩어 한쪽 귀를 잘라내고 인조고막을 했다. 그때 시신경을 잘 못 건드린 신경과 의사의 과실 탓에 자칫하면 실명 위기까지 올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장애진단 1급을 받았지만, 평상시 생활과 직장에서 근무하는 데 지장이 될 만한 일은 없었다. 지훈씨가 롯데케미칼 다니기 전에는 순천 톨게이트, 출입국관리사무소 등을 다녔다고 한다. 
때문에 우씨는 엄연히 과로사에 해당한다고 거듭 밝혔다. “우리는 이중 업무를 해서 과로사다. 장애인을 뽑을 때는 뽑을 만 하니까 채용을 한 것 아니겄소. 회사에서 지정해준 건강진단서도 끊으라고 해서 다 끊어줬고, 아무 이상이 없었어요. 그러면 그거(장애인)에 합당한 일을 줘야지 과한 일을 또 줬느냐 이 말이오. 1인2역을 하니까…”

통상 과로라고 할 때는 육체적인 과로와 함께 정신적으로 과도한 스트레스가 포함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법원 판결 관련, 과로사 산재처리 요건에 따르면 급격한 과중 부담, 단기간 과중 부담, 만성적 과중 부담에 따른 업무상 과로의 인정, 과로와 질병 간 인과관계 등이 주요 요건에 해당한다.

민주노총 법률자문인은 “작업량이 갑자기 늘어나면 일정 시간이 지나면 몸은 적응했다고 하더라도 과로성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장애가 있는 지훈씨 상황에서 업무가 가중될 때는 어떻게 될까? 이 자문인은 “장애가 있는 사람한테 약속한 것 이상으로 많은 일을 시켰고, 이것이 질병의 요인이 악화할 수 있을만한 성질의 것이라면 업무를 과도하게 준 것이기에 업무 관련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회사 측은 업무가 과중 된 적도, 작업 내용이 바뀐 것도 없다고 했다. 처음부터 지훈씨가 맡은 업무는 화학 공장에서 생산한 액체용품을 탱크롤(기름통)에 실어 나르는 생산직이었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석유화학회사인 롯데케미칼 3공장 전경 ⓒ에브리뉴스(사진=故한지훈씨 유족)
"화학약품 냄새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지훈씨 큰형은 공장 주변의 냄새가 역하다고 언급하며 유해물질과 직업병의 연관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 그의 말로는 “화학약품 냄새가 심하게 나요. 레미콘 기사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말로도 롯데케미칼 공장 부근에만 가도 냄새 때문에 힘들다고 하대요.” 우씨 역시 지훈씨로부터 작업장 냄새 때문에 머리가 찌릿찌릿 아프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이 말을 들으니 영국 모델의 죽음 직전까지 갈 뻔한 일화가 겹쳐 떠올랐다. (지훈씨 사인인)패혈증은 미생물의 감염에 대한 전신적인 반응으로 각종 주요 장기의 장애를 일으킨다. 영국의 이 모델도 최근 패혈증 쇼크를 겪었다고 알려졌다. 성형외과에서 엉덩이 주사를 맞을 당시 필러 성분인 폴리메틸 메타크릴레이트(PMMA)가 세균감염을 일으켜 사망에 이를 뻔한 것이다. 지훈씨가 있는 공장에서도 PMMA 이 생산되고 있다.

지훈씨가 근로계약 한 롯데엠알시(구 대산엠엠에이/대표 조재용, 나카야마 히로시 )는 롯데그룹계열사 롯데케미칼(구 호남석유화학)과 일본의 화학업체인 미쓰비시 레이온이 합작 설립했다. 석유화학 폴리 메타크릴레이트 분야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롯데케미칼이 MMA(메틸메타크릴에이트)를 제공하고, 미쓰비시레이온이 PMMA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 양사가 각각 롯데엠알시의 지분 50%씩을 보유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롯데케미칼의 지분 0.30%를 소유하고 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 왜

과거 폭발화재를 일으킨 롯데케미칼을 비롯해 GS칼텍스, LG화학 등이 소재한 석유화학 국가산업단지는 유해물질을 둘러싼 공해와 직업병, 환경 안전사고 등의 산업재해 문제가 심각해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 '죽음의 도시'라는 불명예에 휩싸여 온 곳이다. <매일노동뉴스>에 따르면 지난 1996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조사결과 여수산단의 유해물질 노출수준은 세계보건기구 기준치의 수십 배에 달해 '집단이주'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기까지 했다.

2007년 한국산업단지공단 11월 동향보고서 기준 여수산단 노동자 현황은 비정규직까지 포함해 2만여 명. 이중 다수의 노동자가 석유화학제품을 담당해 백혈병 등 직업병을 초래해 여수산단내 건강권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비정규직일수록 작업환경이 열악해 유해물질 노출 위험이 크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우씨도 여수산단을 둘러싼 산재 사고 관련 잡음들을 들어본 듯했다. "여수 공단에서 인사 사고가 자주 나요. 근데 요놈들(사측)이 유가족 측에다가 보상을 제대로 해줄 생각은 않고 뒷돈을 들여 꼼수를 부려요. 나 그런 말도 숱하게 들었어요."

"생떼 같은 내 새끼… 왜 방치했느냐"

▲고 한지훈씨의 마지막 목소리를 전하던 우옥순 씨가 울음을 터트렸다.ⓒ서지연 기자
- 사고 당일(5일) 이상한 점은 없었나요.

시종일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전투태세에 임하는 사람처럼 긴장의 고삐를 놓치지 않았던 우씨는 사고 당일 물음에 금세 목이 잠겼다.

“그날도 방긋방긋 웃으면서 즈그 마누라 안아주고, 새끼 안아주고 그러고 갔어. 나한테도 엄마, 아버지한테 못 받은 사랑 내가 듬뿍듬뿍 부어줄게, 하고 간 놈이 오후 3시 40분에 나한테 전화가 왔어요. 엄마 나가 몸이 너무 많이 아파. 병원 가야겠어. 그러고 나서 4시 49분에 엄마 여기는 차가 없응께 택시 타고 롯데케미칼 3공장 앞으로 와 줘. 그러고 나서 엄마 고열이 나고 숨도 못 쉬겠고, 머리가 터질 것 같고 쓰러질 것 같아 말도 안 나와.” 불현듯 우씨가 눈을 질끈 감고 목을 놓았다. “그것이 내 새끼 마지막 말이요. 마지막 말, 목소리, 마지막 목소리…”

▲롯데케미칼3공장 정문 ⓒ에브리뉴스(사진=故한지훈씨 유족)
회사 측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기억했다. “오후 4시51분에 지훈씨로부터 담당과장에게 전화가 왔지만 통화중이라 받지를 못했다. 부재중 전화를 확인한 과장이 오후 4시52분경에 지훈씨에게 전화를 했다. 지훈씨 말이 머리가 좀 아프고, 병원에 가보겠다, 본인 출하작업 다 끝냈으니까 택시 불러놨다며 가겠다고 했고, 이를 승인해준 것으로 안다.”

그러나 우씨는 아들을 방치하지 않았으면 살릴 수 있었다고 했다. “진즉 119를 불러줬으면 안 죽어요. 출동신고 후 6분 만에 도착했습디다. 이 좋은 세상 왜 죽겄소.”
우씨는 더욱 격앙했다. “저(지훈씨)형이 목포에 가 있는디 차마 동상이 죽었다는 말도 못하고, 또 아들사고 날까 봐 그냥 병원에만 들려줘라 해 갖고, 우리 아들이 병원을 왔는디 그제야 ‘지훈이가 이렇게 됐다’얘기했소. (사이)다들 말도 못하고 나도 말을 못하고 한 열흘 후에 말이 터집디다.”

지훈씨에게는 여덟 살배기 아들이 있다. 그런데 아이는 아빠의 죽음을 알지 못하고 있다. “손주가 아빠 어디 갔어 허요. 아빠 여행 갔겠지 허면, 어린이집 가서 선생님, 우리 아빠는 나 혼자 두고 왜 필리핀으로 여행 갔을까요? 언제 올까요? 아빠 보고 싶어요. 장기랑 같이 두고 싶어요….”
필리핀은 지훈씨 외국인 아내의 고국이다.

"산재신청해라"vs"인정안 해 준다는 것"

ㅡ회사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개인)질병이다, 질병이다로 얘기해요. 1월 10일 이후인가 회사에서는 해줄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얘기합디다.”

▲롯데케미칼 본사가 있는 롯데타워 건물 ⓒ서지연 기자

회사 측의 얘기는 또 다르다. 사측은 “산재처리를 안 해주겠다는 것이 아니다. 회사 단독으로 신청할 수 없다. 유족측에서 신청해야 한다. 신청하십시오, 수차례 제안 드렸지만, 회사 측에서 무조건 배상을 하라는 것이 유족 측의 주장이고, 산재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유족 측이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반박했다. 질병 여부와 관련해서도 “회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면서 “진위를 알고자 근로복지공단이나 여수경찰서 조사가 필요하다는 게 회사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근로복지공단 여수지점 또한 “유족급여청구서는 유족이 신청하는 것”이라며 “저희가 유족과 사용자(회사) 진술도 받고, 객관적 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관련 얘기를 지훈씨 큰형에게 전달했다. 그러자 “회사측은 접수를 하게끔 도장은 찍어주되 인정은 안 해준다는 것”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훈씨 유족은 병원기록일지에 대해서도 의아스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2월 4일 회사 담당자와 고문 변호사를 여기(본사) 2층에서 만나 얘기했소. 취조하듯이 이것저것 묻습디다. 나가 사실그대로 얘기 했소. 1998년에 교통사고 나서 머리 수술 한 얘기와 장애1급 받은 얘기 등을 했소. 그런데 여기서 한 얘기가 나중 보니 병원 의무기록일지에 고대로 옮겨져 있었습디다.”(우씨)

우씨는 맹세코 자신은 J병원이든 S 병원이든 아들의 사고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아들이 의식 잃고 쓰러진 마당에 그런 말 할 정신이 있는 엄마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어요. 아들 몸에서 열이 나니 그거 씻고 닦아주고 있었는데, 나중 기록일지를 보니 내가 정보제공을 했다고 하고, 거기다 내가 회사 고문 변호사를 만날 때 나가 먹는 약봉지 보여줬더니만 그게 우리 아들이 먹는 약이라고 쓰여 있고…. 어찌 그럴 수 있소?”

▲롯데타워 1층 로비ⓒ서지연 기자

- 그럼 아드님은 평소 따로 드시던 약은 없었나요?
“없었어요.”
여하튼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1998년 뇌출혈로 순천향병원에서 수술한 후 (지훈씨가)약을 먹는다’는 기록 등이 의무기록일지에 적혀 있다는 게 이해할 수가 없다는 거였다. 반면, S 병원 직원은 이에 대해 “기록일지는 환자 관계자분들 얘기를 참고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CCTV를 보자 해도 병원에서 안 보여줘요. CCTV 보관이 넘어버렸대요. 회사에서도 CCTV 보여 달라고 해도 없다고 하고….” 우씨는 양쪽 모두 CCTV를 보여주지 않는 것에도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서울Y지역 경찰서에 문의하니 “CCTV 보관기준은 저마다 다르다”면서도 “경찰서에 신고가 들어가면, 담당형사가 수사목적의 권한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씨는 경찰서를 통해서는 왜 알아보지 않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유족 편에 서서 억울함을 달래줄 기관은 없다, 한통속일는지 모른다는 불안 심리가 우씨의 발길을 가로막는 듯했다.

유족을 쫓는 시선들

무엇보다 회사의 태도가 우씨의 불신을 부채질하는 듯했다. 찻집에서 우씨와 대화하기 전부터 우씨와 그 주변을 쫓는 사람이 보였다. 찻집에 들어갔을 때도 문밖 너머로 우씨를 쫓는 시선들이 서성댔다. “롯데 직원들이요.” 우씨는 “저기 있는 사람, 저 사람 등 세 명이 항상 미행해요. 그 사람들이 롯데 직원이요. 계속 사진을 찍고…. 일거수일투족 사진을 찍어서 어딘가로 보내요”라고 눈짓으로 가리키며 속삭였다. 추후 기자는 유족을 둘러싼 회사의 사찰, 미행, 감시 등에 대한 회사 측 입장을 물었지만, “모르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번은 본사 간부급이 ‘할머니, 왜 직원들 일도 못하게 하고, 피곤하게 괴롭혀요.’ 하지 않겠소. ‘네놈도 롯데 종이구나!’ 그 말에 아무 말도 못하대요. 개중엔 눈치껏 지지해주는 직원들도 여럿 돼요. 우리 아들 사진 있는 피켓 메고 화장실에서 엉엉 우는데 한 직원이 ‘할머니가 여기(본사)오셨으니 (근로자가)억울하게 죽었구나 알지, 안 그랬으면 여수에서 쉬쉬하고 말았을 거예요’하고, 여수에서도 지훈이 동료분이 음료수 주면서 회사에서 일 처리를 잘못하고 있다고도 하고…."

공장 동료 중 과로사나 직업병 등 증명해줄 만한 이들이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돌아온 우씨의 대답은 ‘없다’였다. “없어요. 이제는 다들 얘기를 안 하려고 하고, 전화해도 모른다고 하고 답해줄 수 없다고 해요. (사이)나가 일흔 살이 넘었소. 앞으로 이런 억울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죽을 각오로 싸울 것이요. 앞으로 공단에서 사고가 나면 인사사고 안 나라는 법이 없잖아요. 나로 말미암아서 회사에서 유가족 측을 위로해주고 보상을 제대로 해서 일 처리를 빨리빨리 하게끔 하려요."·

“부검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관련 문제를 대략 전해 들은 한 시민단체 관계자가 아쉽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지훈씨 큰형에게 이 같은 지적을 전하자 “알아보니 과로사나 직업병 같은 경우는 부검 해도 안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 마당에 굳이 내 동생 부검을 할 필요가 있겠나?”라고 말했다.

한편, 유족은 지훈씨의 산재처리 촉구를 위한 서명 운동을 하고 있다. 지금껏 참여한 사람은 2000여 명. 서명 운동에 동참한 서모씨는 "8살 아들과 필리핀 아내를 뒤로 하고 세상을 등진 성실한 가장의 죽음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롯데케미칼이 산재처리 보상에 적극  나서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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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사랑 2015-03-21 11:23:21
참 착실하고 건강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누구보다 어머님에게 효도하는 아들이었는데...
갑자기 당한 일이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대 기업의 횡포가 이렇게까지 인륜을 저버릴 수 있나요 그러면서도 지탱되는 사회가 ...안타깝습니다.
힘내세요 지훈이 어머님 진실은 밝혀집니다.

산단이야기 2015-03-21 11:11:39
비정규직이서럽구나!!! 큰회사에서 메몰차구나! 너무하구나! 엉엉엉... 너무하구나! 칠순의 노모와 8살 아들 다문화가족 아내. 너무너무 안됐구나!!!

미켈란젤로 2015-03-21 11:10:01
지훈씨의 어머니를보니 마음이 너무아픕니다.
엄마의심정은똑같은데 아들을먼저보낸 그 아픔을 아신다면 회사는 어머니같은마음으로
남은가족을한번 생각해보시고 새로운 흐망을 가질수 있도록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만능키 2015-03-21 11:04:14
먼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기가를 읽어보니 가슴이 미어지고 통탄할 일입니다.
이것이갑질의 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불쌍하고 어렵고 힘든사람들을 생각하지 못할망정 이렇게 두발로 짓밟고 있는
현실이 아타깝습니다

노블리스 2015-03-19 20:24:34
회사에서 해 줄 것이 없다니? 한가족의 가장을 잃었는데... 당연히 심적인 보상과 물질적 보상을 해줘야
노블리스 오블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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