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명장 건설분야 최초 그랜드슬램 달성자, 박진관
대한민국 명장 건설분야 최초 그랜드슬램 달성자, 박진관
  • 김종원 기자
  • 승인 2015.10.20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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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뉴스=김종원 기자] 박진관 부산외국어대학교 산학취업처 차장은 건설기능공에서 기능장, 기술사, 공학박사,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 대한민국 명장 건축설비 분야 제1호로 선정되어 최초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간단한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저는 시골에서 농사를 주업으로 하던 부모님 슬하에 2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시골형편이
다 그러했듯이 농촌에서 대학을 진학하기란 힘든 일이었고, 이웃 형님께서 국제 기능올림픽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을 때 중학교에서 성대한 환영식을 해주는 모습을 보고 저도 국제 기능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공고에 진학했습니다.
 
그 후 기능올림픽 출전을 위해 기능부에 들어갔으나 경남지방대회에서 입상을 못해 일찌감치 꿈을 접고 건설현장으로 실습을 나왔습니다. 건설현장에 근무하면서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 주경야독으로 상위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하였고 그 자격증을 발판으로 학점은행제를 통해 대학과정을 마치고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대한민국 산업현장교수, 그리고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 되었습니다.
 
기능장, 기술사, 공학박사, 대한민국 명장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된 배경은.
건설현장에 근무하면서 기능사 자격 소지자는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실을 알고 언론 기고와 대정부 건의를 통해 건설 분야 기능계 자격 소지자들도 현장 배치 기술자 및 고급 감리원으로 선정되게 해달라고 건의했습니다.
 
마침내 전문건설업계에서는 저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현장 배치 기술자 및 면허 기준에 포함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반건설과 종합건설에는 해당이 되지 않아 계속해서 언론 기고, 대정부 건의를 통해 건의하자 소수의 이해집단으로 매도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능공 출신도 기술사도 될 수 있고 공학박사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노력했고,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쌓은 많은 노력의 결과가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되는 밑거름이 되어 그랜드 슬램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간 기능인으로 살아오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화는. 
본래 건설현장에서 발생되는 하자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자격자는 건축분야 기술사 또는 건축사뿐입니다. 그런데 일부 몰지각한 기술사, 건축사들이 법원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하자원인을 규명하면서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하지 않고 대기업과 공공기관에 유리하게 왜곡하여 감정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목격하고 직접 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부당한 행위에 대해 사실관계를 입증했고, 억울하게 당할 뻔했던 영세 건설업체와 기능인의 권익을 보호해주는 과정에서 기술사 자격 취득의 필요성을 깨달아 고3 수험생처럼 열심히 공부하여 건축기계설비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자격 취득 후 부산지방법원 등 3개 지방법원에 감정인으로 등록하여 건설 브로커들에게 억울하게 당해 1심에서 패소하고 항소 중인 사건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지정 감정인으로 선임되어 사건을 조사한 결과, 역시 1심 감정인이 영세 건설업체의 권익을 외면한 사실이 발견되었고 수차례의 현장 방문과 30년 넘게 건설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건설브로커의 부당함을 밝혀내어 수억 원의 재산을 보호해드렸습니다. 사회적 약자인 영세 건설업체와 기능인의 권익을 보호하여 억울한 국민이 없도록 한 일에 대한 뿌듯함은 잊히지 않는 일화입니다.
 
대외 강의 활동과 언론 기고를 많이 하던데.  
처음 한 대외 강의는 모교인 김해건설공업고등학교 후배들을 대상으로 전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의 미래에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산업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기능인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전문계고 학생들은 산업사회로 진출하기보다는 무작정 대학에만 진학하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이는 산업현장에는 기능 인력이 부족하고 대졸 고학력자는 취업을 못해 실업자가 증가하여 산업현장인력 불균형 현상이 사회 문제화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진학만이 능사로 아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저는 일찍이 현장 기능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지방언론은 물론 중앙언론에까지 경험을 바탕으로 기고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를 전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강의를 통해 알려주었고, 이렇게 시작한 강의는 건설현장에서 쌓은 각종 하자 문제에서부터 신재생에너지 도입 사례, 건설기능공에서 기술사, 공학박사가 되고 대한민국 명장이 되기까지 경험담 등이 더해졌습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물론 군부대 등 각계각층으로부터 강의 요청이 있어 제 소중한 경험을 대외 강의와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전해 드리고 있습니다.
 
강의 활동을 통해 얻는 보람이 있다면. 
·고등학교 진로 지도 강의 후 학생들이 몰려와 대한민국 명장의 사인을 요청할 때와 진지하게 자신의 진로에 대해 질문을 할 때입니다. 제 강의가 어린 학생들에게 미래의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그 학생이 우리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 된다면 이 얼마나 보람차겠습니까.
 
또 관련 전문분야 법정 교육 강의 후 제가 발표한 자료에 대해 현장 실무적인 좋은 자료라고 하면서 자료를 요청할 때, 직장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방황하는 분들께서 제가 살아온 길에 대한 강의를 듣고 새로운 인생의 목표가 생겨 열심히 하겠다는 이메일을 받았을 때가 가장 보람 있습니다.
 
보냉가설 봉사단에 가입하여 봉사활동도 많이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시작한 계기는. 
저는 가정 형편상 일반대학을 진학하지 못했고 공고 졸업 후 10년 만인 1990년에 창원기능대학을 진학했습니다. 재학 동안 기능봉사단의 일원으로 경북 청도에서 농촌봉사활동을 실시 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경운기 짐칸 철판 교체와 보일러 수리, 지하수펌프 수리 봉사를 했고 시골 어르신들께서 정말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졸업 후 다니던 건설 회사를 그만두고 현재 직장인 부산외대로 이직을 하여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자 시골 어르신들의 얼굴이 떠올랐고, 때마침 저희 집사람이 봉사를 하고 있는 지역 복지관의 보일러와 배관시설을 수리하면서 봉사활동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2013년부터는 부산경남지회 회장을 맡아 회원분들과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 지역의 소외계층 어린이들을 위한 대한민국 지역아동지킴이 봉사단에 가입하여 매월 한 차례씩 지역아동들을 대상으로 체험적 문학 글 나눔 봉사활동 멘토로서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봉사활동을 하며 가장 보람 있었던 사례는. 
일전에 시골 폐교를 임대하여 장애우 재가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경남 고성의 장애우 복지시설에서 자원봉사자로 배관공 3명을 요청하는 내용이 사회복지자원봉사 인증관리 센터에 등록된 것을 보고 제 아들과 함께 등록했었습니다.
 
이후 3주가 지나도 추가 지원자가 없어 결국 아들과 둘이 시설을 방문해 봉사를 진행했습니다. 그곳은 시골이라 상수도가 공급되지 않아 지하수를 이용하는데, 배관 누수로 급수펌프는 계속해서 돌아가고 양변기 부속이 노후화되어 누수가 발생되고 있었습니다. 긴급 보수를 한 후 연이어 3주간 휴일을 이용하여 보수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보냉가설 봉사단을 이끌고 12일간 포클레인까지 동원하여 시설 전체의 배관을 교체한 것이 가장 보람 있었던 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봉사상 상금과 대한민국 명장 일시장려금을 기부한 이유는. 
협성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제2협성봉사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받은 상금은 제가 봉사를 하고 있는 복지관에 전액 기부했습니다. 당시 복지관에서 지역아동과 어르신들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예산이 부족하여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또 저는 기능장을 취득한 1999년부터 저희 모교 후배들을 위해서 제 경험을 바탕으로 선취업 후진학 성공사례를 발표하며, 굳이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서도 자신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우리의 젊은 청소년들이 산업사회로 진출할 수 있는 동기부여의 기회를 제공해왔습니다.
 
그러다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되었는데 이는 제가 김해건설공업고등학교를 1회로 졸업하고 33년 만에 저희 모교에서 처음으로 선정된 일이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저는 후배들에게 미래에 대한 밝은 희망을 전해주기 위해 장학금을 기탁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한 말씀.  
우리 사회는 학력 위주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기능인으로 산업현장에 진출하기를 꺼려하고 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대학에 진학하려 하다 보니 산업사회는 심각한 인력 불균형을 겪고 있는데다가 대학을 졸업한 신입사원을 채용하여 별도의 재교육비로 6천여만 원이 투입된다는 경영자총협회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청소년들은 대학 진학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능인으로 산업현장에 진출하면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우리나라의 젊은 청소년들에게 비록 기능공 출신이라도 노력하면 저렇게 될 수 있구나 하는 희망의 상징이 되고자 합니다.
 
저는 매 순간 새로운 마음으로 도전을 해왔고 최선을 다해 그 꿈을 이루어 왔으며 앞으로도 더 큰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이러한 저의 꿈을 자라나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이 되도록, 가능하다면 전국을 순회하면서 저의 소중한 경험을 들려주어 우리의 젊은 청소년들이 건전한 직업관을 가질 수 있는 동기부여의 기회를 제공해 주고 싶습니다.
 
또 제가 가진 건축설비 분야 기술로 재능 기부를 계속하면서 관련 분야 기술자들의 법정 직무교육에도 꾸준하게 참여하여 직장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계시는 분들께도 희망의 아이콘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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