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뉴스=연미란 기자] 대한의사협회(회장 노환규)가 의·정 ‘2차 협의안 채택’을 두고 실시한 찬반 투표 결과에 '철회'가 아닌 '보류'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 위원 배분 문제를 놓고 의협과 정부의 이(異)견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의협은 20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정협의안 수용, 집단휴진 강행 여부를 묻는 총투표에 4만1천226명(전체 회원 중 59%)의 회원이 참가해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찬성이 62.16%(2만5천628표)로 과반수를 넘음에 따라 2차 협의안 채택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다만 채택 전 의·정이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
노환규 의협회장은 이번 투표 결과와 관련해 “이번 투표 결과는 철회가 아니라 유보”라고 밝히면서 “국민에 위해가 되는 정책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고 나간다면 의사협회는 언제든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기 위해 사명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 회장이 말한 ‘국민에 위해가 되는 정책’이란 표면적으로는 원격진료와 의료영리화 강행을 뜻한다. 노 회장은 지난 18일 “원격진료에 대한 반대 의견에는 변함이 없다”며 “원격진료 시범사업을 주장한 것은 원격진료를 확실히 막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시범사업을 통해 불안정성과 효과없음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에 효과적인 저지 방안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건정심 구조 개편과 관련한 의협의 속내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건정심 구조개편이 의협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원격진료·의료 영리화 반대’ 프레임으로 2차 협의안 파기를 주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의·정, ‘동상이몽’ 논란…가입자·공급자 동(同)수 추천?
앞서 지난 17일 의협과 정부는 건정심의 위원을 가입자와 공급자가 동(同)수로 추천해 구성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을 연내에 추진키로 했다. 건정심은 수가(의사 등 의료서비스 제공자에게 제공하는 돈)와 보험료를 결정하는 핵심기구다.
의료계 인원이 늘어날 경우 수가 인상 등을 결정하는데 의사들의 입김이 세진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국민을 등에 업고 이권을 챙겼다는 비판 속에서도 이 대목 때문에 ‘만족한다’는 자평을 내놨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러나 이틀 만에 의협과 정부는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논란이 된 대목은 ‘가입자와 공급자가 동(同)수로 추천한다’는 부분이다.
복지부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건정심 구조 개편과 관련해 “공익위원 전체(8명)를 가입자와 공급자가 동수로 추천하는 게 아니라, 정부의 몫(4명)을 뺀 나머지 위원(4명)에 대해서만 추천하기로 한 것”이라고 밝혀 의협의 반발을 샀다.
정부 관계자(복지부·기재부·건보공단 등)의 몫은 그대로 두고 나머지 인원에 대해서만 의협 측과 가입자 측이 추천한 인사를 포함시키겠다는 얘기다. 건정심에서 논의되는 사항들이 건강보험료와 정부 세금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정부의 개입은 당연하다는 논리다. 협상 당시 의협도 이 부분을 인정했다는 게 정부 측의 설명이다.
반면 의협 측은 “정부 관계자를 빼고 공익대표 모두(8명)를 가입자·공급자가 반씩 추천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날 투표 결과 발표 직전 노 회장은 건정심 개편안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복지부 관계자에게 통화를 시도했다. 약 10분 뒤 문자 메시지로 답변이 왔다.
권덕철 보건의료정책관은 “복지부는 3월 16일 제 2차 의정 협의문 결과문에 명시된 협의사항을 존중하며 최근 건정심 관련 혼란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건정심 구조와 관련해 공익위원 범위와 수 선정절차 등은 앞으로 정부와 의료계가 협의해 마련키로 했으나, 현행법에 대비시켜 설명한 것은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켜 유감이었다"고 해명했다.
일단 의협의 투표 결과에 따라 2차 집단 휴진은 유보 상태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건정심 구조와 관련해 대화에 나설 때마다 의협과 정부의 마찰이 계속될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편 보건의료노조는 이날 오후 성명을 내고 “영리화 정책을 강행하기 위해 정부가 동원한 것은 '협상의 기술'이 아니라 '추악한 꼼수'였고, 의사들의 파업을 주저앉힌 것은 '정부의 승리'가 아니라 '협박과 회유'의 결과물일 뿐"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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