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뉴스=연미란 기자]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안그래도 양 끝으로 내달리는 한국사회 구조가 공무원연금 개혁을 시작으로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분열 시작과 끝에 국가가 있지만 그 국가는 현재, 말이 없다.
정부는 일찍이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을 기본으로 물밑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을 준비해 왔다. 최근에는 연금을 국민연금 수준으로 낮추고 퇴직수당을 연금으로 보전해주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멀쩡하게 일하던 공무원들이 줄줄이 떠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정청은 여전히 공무원·국민들과 밀당(밀고 당기기) 중이다. 설(說)은 난무한데 사회적 논의는 차치하고 수개월째 “아직 정해진 게 없다”는 발언만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의 표시라고 했다. 이쯤되니 ‘공무원 길들이기’라던가 ‘공무원 간보기’, ‘박근혜 대통령의 친(親)기업 행보’ 등 의심에 불과했던 것들에 강한 확신이 든다.
결국 공공성은 ‘후퇴’하고 사익은 ‘쫓는’ 정체불명 국가가 되고 있다.
국가란 원래 응큼했으니 그 검은 속내야 뻔히 보인다지만 돌아가는 흐름을 보니 슬슬 걱정이다. 국민분열 조짐이 보여서다.
국가는 ‘공무원 연금 누적적자가 9조8000천억원’이라는 프레임을 내세워 여론몰이에 앞장서고, 언론은 ‘공무원연금 220만원 VS 국민연금 84만원’이라는 대칭으로 ‘공무원 VS 비공무원’을 양산시켜 분열을 거들었다.
덕분에 국민들은 ‘혈세가 공무원들에게 가고 있었다니’, ‘국민연금보다 3배나 많이 받는 건 불평등하다’는 등 ‘한국형 평등논리’에 매몰되고 말았다.
<88만원 세대>의 공저자인 박권일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 같은 심리를 '한국평 평등주의'라고 정의 내렸다. 사회 전체의 비대칭을 문제삼는 '일반적 평등주의'와 달리 개인적 빈부(貧富)의 비대칭만 문제 삼는 사회를 꼬집은 말이다.
공무원연금에 혈세가 쓰이게 된 근본적 원인(정부는 외환위기 당시 퇴직금, 사망조의금 등에 연기금을 가져다 썼다.)은 차치하더라도 ‘왜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는지’, ‘세금이 대체 어떻게 쓰이고 있길래 매일 모자란다고 하는건지’, ‘세금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든지’ 국가를 향해 따지거나 묻는 사람은 없다.
오직 ‘나와 너의 불평등’을 불만 삼아 공무원들에게 “너무 많이 받는 게 아니냐”고 따진다.
우리 국민 모두 불안한 노후에 직면했지만 어느 누구도 “공공성 후퇴는 안된다”고 “우리 모두를 불안한 노후로 밀어넣어선 안된다”고 정부를 향해 외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66세이상 인구 중 중위소득 50%이하 비율)은 2012년 기준 48.5%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평균인 11.6%보다 무려 4배가량 높다. 실제 국민 모두 불안한 노후에 직면했다는 얘기다.
게다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공공요금 인상’ 시사로 국민 모두가 공공요금 개혁의 희생자로 몰릴 위기에 처했다.
최 부총리는 지난 7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 결산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공공기관 방만경영 해결 방안에 “공공요금 현실화”를 거론한 바 있다. 전기세, 상·하수도 요금 등 공공요금의 전반적 인상을 시사한 셈이다.
국가는 현재 재정적자의 원인을 공무원연금으로 한정하고 있지만, 공공요금 인상으로 국민모두에게 희생을 강요하게 될지 모른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그 첫 단계라는 합리적 의심이다.
그 때를 대비해 지금 ‘공무원연금 VS 국민연금’ 프레임은 위험하다. 똘똘 뭉쳐 공공성 후퇴를 막지는 못할지언정 양분돼서 ‘더 받네 덜 받네’로 싸우는 건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물론 재정적자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결사반대’를 주장하잔 말은 아니다. 국가는 필요에 의해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다. 다만 그 전에 합리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쉬운 예를 들어, 한달 100만 원을 생활비로 쓰는 집이 있다 치자. 매달 비슷했던 가계비가 어느 순간부터 모자란다면 대개 ‘적자의 원인 확인 후→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수순을 밟는다. 그래도 이유 있는 적자가 계속 발생한다면 그땐, 가계비를 조금씩 늘리는 단계로 접어든다.
이처럼 집집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합리적인 가정이라면 일단 적자의 원인을 살펴본다.
그런데, 5천만 국민을 상대로 가계를 운영하는 국가는 적자가 발생해도 이를 절대 오픈하지 않는다. 공무원연금 개혁에 앞서 ‘적자의 원인 확인’이 중요한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재정적자를 앞세운 여론몰이를 통해 재정 확보에만 골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공성은 후퇴되고 사적 이익을 쫓는 도돌이표가 계속 되고 있다.
모자란 재정이 녹조라떼로 불리는 ‘4대강’, 흉물스런 ‘DDP’, 혈세하마 ‘새빛섬(구 새빛둥둥섬)’ 등에 쓰였다는 사실에 분개하면서도 ‘한국형 평등주의’에 매몰된 사람들은 “공무원들때문에 재정적자가 발생했다”는 프레임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세금내역 공개 후 투명한 세금 개혁’을 외치는 일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이나 공공요금 인상은 그 다음이다.
성숙한 국민이라면 키보드 워리어가 돼 100만 공무원을 혈세 하마라고 비난하기 전에 외쳐야 한다. “혈세, 정말 어디에 쓰였습니까”라고.
< 저작권자 © 에브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기사제보 : 편집국(02-786-6666),everynews@everynews.co.kr >
에브리뉴스 EveryNews에서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받습니다.
이메일: everynews@kakao.com
세월호 특별법이나 제대로 한 후 논의해도 될 일을 왜 이렇게 언론플레이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