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당국회담 무산에 ‘진정성’ 찾는 박근혜 정부와 언론
남북당국회담 무산에 ‘진정성’ 찾는 박근혜 정부와 언론
  • 최신형 기자
  • 승인 2013.06.1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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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南北, 진정성 앞세워 책임 떠넘기기…그 이면에 담긴 불편한 진실

▲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전군주요지휘관 격려 오찬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뉴시스

[에브리뉴스=최신형 기자] “너 진심이야. 진짜 약속 지키려고 했어? 근데 난 못 믿겠어. 변명하지 마. 네 말엔 진정성이 없어!”

언제부턴가 정치인의 입에서, 누리꾼의 정치토론에서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진정성(眞情性)’. 맞다. 진정성이다.

새누리당은 야당에 “상생과 타협의 국회를 만들려는 진정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야권은 박근혜 정부를 향해 “대통합 의지가 있느냐”며 날선 비판을 가한다.

진정성이란 키워드는 정치협상뿐 아니라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중요 도구다. 13일 오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시간에도 진정성에 목매며 상대방을 판단하고 있을까. 진정성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그야말로 ‘진정성을 위한 진정성을 위한 진정성의 시대’다.

이 단어가 또 우리 사회에 휘몰아쳤다. 당국회담이 무산되자 남과 북도 정치권도 언론도 누리꾼도 “누가 진정성이 없는가”를 관찰하는 중이다. “진정성을 파기하는 자, 그대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리니”라는 말씀이라도 선포하려는 듯.

남북 당국회담 무산에서 불거진 진정성 안에 있는 실체. 첫 번째 ‘격(格)’이다. 쉽게 말하면 “넌 나하고 급이 다르다”는 ‘남달라’ 정신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맞다. MB(이명박) 정부 3년 차 국정 어젠다 중 하나가 국격 향상이었다.

지난 2010년 11월 이명박 대통령은 제5차 G20 정상회의 서울 개최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개발원조위원회 가입을 계기로 선진공여국 지위를 획득하자 “2010년을 국격 제고의 원년으로 삼자”고 말했다.

그때부터 청와대도 대통령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당시 위원장 어윤대)도 여당에서도 앵무새처럼 ‘국격’을 얘기했다. 혹자는 G20 개최를, 다른 이는 법치주의 확립을 국격이라고 했다. 당시 발생한 구제역 파동을 놓고도 “국격을 떨어뜨리는 행위”라는 비판이 나왔다.

당시 그 ‘격’을 따지다가 무슨 일이 벌어졌나. 서울 서대문구가 ‘냄새 난다’는 이유로 G20 회의 기간 동안 음식쓰레기 처리시설의 운영을 일시 중단키로 한다고 발표했다. 이유는 음식물 악취가 각국 정상에게 나쁜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것. 시민에게 희생과 피해를 강요한 전형적인 후진국형 발상이다. 국격이 나쁘다는 말도 국격을 떨어뜨리자는 주장도 아니다. 그 ‘격’만 따지다가 여러 가지를 실기할 수 있단 얘기다.

진정성보다 중요한 것은 ‘공적 타당성’

남북 당국회담에 임하는 박근혜 정부는 어떤가. 북한이 남북 당국회담을 북미 대화의 지렛대로 이용하고 있다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격’에 골몰한 나머지 남북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잃어버렸다. 그 결과는 북한 측에 강경도발의 명분만 주게 된 꼴이 됐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12일자 <조선일보> 사설 제목이다. <북한 南北 회담할 뜻이 진짜 있긴 했나> 이 사설은 “정부 간 회담에서 당사자들이 대표의 격(格)을 맞추는 것은 상식이고 예의”라며 “북이 끝내 김양건을 회담 대표로 내보내지 않고 한참 격이 떨어지는 조평통 국장을 대표로 내보내면서 우리에게는 장관이 나오라고 요구한 것은 처음부터 회담에 뜻이 없었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진정성이 없단 얘기다.

진정성 안에 있는 실체 두 번째는 ‘형식과 내용’. 세 번째 ‘글로벌 스탠더드’. 박 대통령이 말했다. “형식은 내용을 지배한다.” 청와대 한 관계자도 전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미래지향적으로 가려는 것이다.”

 

▲ 남북당국회담이 개최 하루를 앞두고 수석대표 '격' 이해 차이로 무산된 가운데 12일 오후 경기도 파주 도라산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녘 개성공단 일대가 안개에 덮혀 있다.@뉴시스

외교협상 과정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박근혜 정부의 유연성이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이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미국 측에 ‘형식과 내용’, ‘글로벌 스탠더드’를 요구한 적이 있나. 들어본 바 없다.

글로벌 외교는 기존의 단선적 외교에서 벗어나 외교의 내용과 형식을 양적·질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기본전제로 한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다양성과 다극성을 바탕으로 전 지구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미래전략을 지향한다. 때문에 글로벌 외교를 두고 ‘공공외교, 촉매외교, 탈근대외교’라고 하지 않나.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형식을 따지다가 내용의 결과물도 도출하지 못하는, 단선적 외교의 한계를 드러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철학과 비슷하다. MB정부가 ‘선(先) 핵폐기-후(後) 대북지원’을 골자로 하는 ‘비핵개방 3000-신 평화구상’에만 매달린 결과는 ‘남북관계 파탄’이었다.

“핵을 폐기해야 지원한다”는 접근이 아닌 지원을 통해 점진적으로 핵을 폐기토록 하면 되는 일이었다. 선(先) 지원을 통해 후(後) 핵폐기를 유도했어야 했다. 실용주의에 방점을 둔 신 평화구상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이 핵 폐기를 할 수 있는 현실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A를 하면 B를 줄게”라는 단선적 외교로 인해 남북관계만 더욱 경색됐다.

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다. ‘격’ ‘형식과 내용’ ‘글로벌 스탠더드’를 앞세워 북한의 진정성을 찾을 게 아니라 실질적인 결과물을 도출해내 북한으로 하여금 몽니를 부릴 수 없도록 판을 만들었어야 했다. 당 우위 국가인 북한 측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회담에 임해 점진적으로 북한을 글로벌 외교의 장으로 이끌 필요가 있었다.

실체 불분명한 진정성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진정성이란 ‘진실하고 참된 것’이다. 한마디로 내면의 가치다. 누가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실체가 없어서가 아니라 ‘진정성이 있는지 없는지’ 알기 어려워서다.

우리 사회가 논의해야 할 것은 진정성 여부가 아니라 A라는 주장의 공적 타당성이다. 우리의 주장이 공적 타당성을 갖는지 북한의 주장이 공적 타당성을 갖는지 그리고 그 공적 타당성을 받아들일 때 사회적 합의를 이뤄낼 수 있는지, 이것이 중요하다.

상대방의 진정성을 알아내기 위해 독심술만 펴다 보면 객관적 토론이나 협상이 단 한 발짝도 못 나간다.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어”라는 마인드로는 안 된다. 신뢰를 버리고 상대방에 대한 증오를 지닌 채 협상에 임할 수는 없지 않나.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선 신뢰’에 방점을 찍을 수 있을까. 박 대통령의 의지에 달렸다.

“김양건은 1.5, 장관급은 1.0, 차관급은 0.5…결국 맞는 사이즈가 없어서 무산됐다는 얘기. 정말 유치해서 못 봐주겠네. 얘들아, 신발 맞추냐”라며 “북, ‘김양건은 1.5급’ VS 남 ‘김양건은 1.0급’. 북 ‘강지영은 1.0급’ 남 ‘강지영은 0.5급’. 남과 북이 김양건과 강지영에 대해 0.5의 시차를 보이는 현상.(진중권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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